‘대한독립’ 북간도 항일 독립운동 특별기획사진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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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 북간도 항일 독립운동 특별기획사진전 개최
  • 김용석 기자
  • 승인 2016.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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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에 세운 새로운 한인의 이상향과 독립운동기지건설 특별기획사진전

- 2016.10.23.(월)~27(목), 국회의원회관 제3로비에서 열려

국회의원 안민석은 <대한독립, 북간도 항일 독립운동> 특별기획 사진전을 2016년 10월 24일(월)부터 27일(목)까지 국회의원회관 제3로비에서 개최한다. 이번 사진전은 전시된 사진의 소장처인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가 주관하였다.

1899년 2월 18일 국운의 끝자락에서 4가문 142명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이주한 규암(圭巖) 김약연(金躍淵1868~1942) 선생은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에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였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고 독립운동을 막으려고 이주 한인들을 탄압하였음에도 근대 민족교육으로 항일 민족의식을 키워 수많은 독립운동 지도자를 배출하고, 북간도에 독립운동 기지를 구축하였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북간도에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항일 독립운동을 선도했던 선조들의 삶과 활동을 재조명하는 첫걸음으로, 전시는 크게 4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1부 ‘북간도에 세운 이상향 명동촌’은 1900년에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의 조부 윤하현 집안이 합세하여 5가문이 건설한 새로운 한인 공동체 이야기다. 간도 대통령이라 불렸던 김약연 선생, 시인 윤동주 등 명동촌의 인물들과 정재면(鄭載冕, 1884~1962) 선생의 선교로 서당에서 한학을 가르치던 명동촌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1909년에 세운 명동교회를 소개한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가 1907년 3개월간 명동촌에 머물면서 사격연습을 하였다는 문암골(만진기, 돌바위산) 사진은 아마 처음 소개될 것이다. 그리고 북간도 최초로 수전 농법에 성공하여 북간도 전역에 전파한 육도하 대교동의 벼농사 모습 역시 최초로 공개된다.

제2부 ‘항일민족정신 함양 북간도 민족학교’는 오산학교, 대성학교와 함께 3대사학으로 알려졌던 명동학교(明東學校, 1908)와 용정의 은진학교, 명신여학교 등 항일 독립운동의 지도자를 배출했던 학교를 소개한다. 특히 1916년 김약연 선생이 미주 대한인국민회 회장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에게 󰡔군인수지(軍人須知)󰡕, 󰡔국민개병설(國民皆兵說)󰡕 등의 책을 부탁하는 친필편지에서 명동학교에서 군사훈련으로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태극기와 태극, 무궁화, 십자가가 새겨진 명동학교의 막새기와로 항일 민족의식의 실체를 보여준다.

제3부 ‘경신참변과 일제의 한인탄압’에서는 북간도 한인과 독립군 토벌의 선봉이었던 일본군 나남19사단 보병 75연대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독립군 토벌대가 독립군의 무기를 탈취하여 전시하고 독립군을 처형하는 만행을 공개하였다.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참패한 분풀이로 일으킨 경신참변(庚申慘變)으로 학살당한 한인의 합동장례식 사진을 공개하여 일제의 북간도 한인탄압의 진상을 밝혔다.

제4부 ‘북간도 한인조직과 항일 독립운동, 그리고 용정’에서는 1919년 용정 서전평야에서 일어났던 3.13만세운동의 사진과 독립선언포고문으로 북간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의 진상을 보여준다. 명동학교 출신으로 구성되었던 철혈광복단원으로 15만원탈취사건을 일으킨 최봉설과 임국정의 사진과 기념비 사진도 공개된다. 이와 함께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1889~1930) 장군, 비록 서간도였지만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우당(右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선생 등의 독립운동을 소개하였다. 특히, 연변 왕청현 라자구에 있었던 독립군 사관 양성학교 대전(라자구)무관학교 앞 강 건너 태평구촌 산 중턱에 있는 독립군 피신처로 알려진 동굴 입구의 40x30cm 태극기와 무명의 ‘대한독립군’ 4명의 이름이 세겨진 바위사진으로 북간도 독립운동의 실체를 보여준다. 대전무관학교는 1914년 이동휘(李東輝, 1873~1935)와 장기영(張基永)이 이종호(李鍾浩, 1885~1932)가 제공한 자금으로 세운 독립군 지도자 양성학교이다. 따라서 동굴입구에 새겨진 태극기와 ‘대한독립군’ 이준(李俊), 양희(梁熙), 지승호(池承浩), 장태호(張泰浩) 4명의 명단은 새로운 연구 과제이다. 1920년대가 되면 명동촌에서 용정으로 터전을 이전하게 된다. 이들 한인을 결속한 간도국민회(1914)가 없었다면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제는 한인의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막으려고 일본총영사관, 조선은행, 일본인구락부 등을 용정에 설치하고 한인을 조직적으로 탄압한다.

이 전시로, 이역만리에서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한독립과 국권을 되찾으려고 끝까지 싸웠던 선조들의 삶과 의식에서 미래 한국의 희망을 기대해 본다.

□ 전시개요
○ 제목; 대한독립, 북간도 항일독립운동 특별기획 사진전(Buk kan-do)
○ 기간; 2016.10.23.(월) ~ 10. 27.(목)
○ 장소; 국회의원회관 제3로비
○ 주최/주관; 국회의원 안민석,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 내용; 북간도의 항일 독립운동과 새로운 이상향 민족공동체 관련 사진
○ 전시품; 관련 사진 60여 점
○ 부대행사; 없음

□ 전시 구성
- 제1부; 북간도에 세운 한인의 이상향 공동체 명동촌
- 제2부; 항일민족 정신 함양의 요람 북간도 근대민족학교
- 제3부; 일제의 북간도 한인 탄압과 경신참변
- 제4부; 간도 한인조직과 항일독립운동, 그리고 용정

주요 전시사진 소개
보도 001_규암 김약연 선생 기념비 제막식(1943)
보도 002_북간도에서 최초로 수전 농법에 성공하여 간도 전역에 보급한 육도하 대교동 논농사 모습(용정과 명동촌 중간); 최초 공개
보도 003_명동촌의 후손 윤동주(김약연의 생질, 뒷줄 왼쪽 1번)과 문익환 목사(뒷줄 우측 1번)(1935); 최초 공개
보도 004_1907년 안중근의사가 3개월 간 명동촌에 머물면서 사격연습을 했다고 전해오는 문안골(만진기, 돌바위산) 전경; 최초 공개
보도 005_규암 김약연 선생이 명동야소교학교장 이름으로 미주 대한인국민회 회장인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국민수지󰡕 등 군사훈련교본 요청 자필 편지(1916)
보도 006_항일민족운동의 상징 태극기, 십자가, 무궁화, 삼태극 문양이 주조된 명동학교의 막새기와(1910년대)
보도 007_친일 조선인민회 사무실이 있었던 용정 일본인 구락부; 최초 공개
보도 008_봉오동 청산리 전투 참패 후 일본군이 마적 두목(萬順匪首)을 독립군이라 하여 처형(1920년대)
보도 009_북간도 3.13 만세(1919, 용정 서전대야)
보도 010_독립군 피신처 동굴 입구의 40x30cm 태극기와 무명의 ‘대한독립군’ 4명의 이름(연변 왕청현 라자구에 있었던 독립군 사관 양성학교 동림무관학교 앞 강 건너 태평구촌 산 중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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