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부터 한무제, 이성계, 나폴레옹까지... 영웅들이 사랑했던 말 이야기

[경기eTV뉴스]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차례 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찌르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다. ‘거북선’은 수군 장수인 이순신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주요 매개체였다. 돌이켜보면 과거 ‘전쟁’이라는 국난(國難)을 극복한 많은 영웅들 곁에는 충무공의 거북선 같은 ‘애마(愛馬)’가 함께 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애마, ‘부케팔로스’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마케도니아 왕자, 알렉산드로스는 사나워서 누구도 태우려 하지 않았던 ‘부케팔로스’를 길들였고, 이후 둘은 그리스, 이집트, 인도 북서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리고 애마가 죽자 그를 추모하며 지금의 파키스탄 북동부에 알렉산드리아 부케팔로스라는 이름의 도시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부케팔로스’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 심지어 화폐에까지 등장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한 무제(武帝, 재위 기원전 141~87)는 장건을 통해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아할테케’ 품종으로 알려진 서역의 ‘한혈마’에 대한 정보를 듣고 대완을 정벌,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한다. 『한서(漢書)』에는 “말이 악와수(渥洼水)에서 나와 <천마지가(天馬之歌)>를 지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무제에게 하늘이 천마를 선물해 그에게 정복전쟁과 권력의 정당성을 주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물에서 나왔다는 무제의 천마는 중국의 전통 시화에서 끊임없이 다뤄진 소재의 하나다.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도 백성들이 자신을 타고난 왕이라 믿도록 도와줄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나라 목왕이 팔준이 끄는 마차를 타고 곤륜산으로 들어가 불멸의 삶을 살았다는 전설에 착안,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횡운골(橫雲鶻), 유린청(游麟靑), 추풍오(追風烏), 발전자(發雷赭), 용등자(龍騰紫), 응상백(凝霜白), 사자황(獅子黃), 현표(玄豹)라는 비범한 이름의 여덟 마리 명마가 등장하게 된다. 오랑캐, 왜구와의 전투에서 화살을 세 발이나 맞은 유린청은 태조가 각별히 아끼던 말로 무덤에 돌구유까지 만들어 넣어줬다. 태조를 도와 영웅이 된 팔준 역시 칭송하는 글과 그림으로 남겨졌다.

19세기 초 프랑스 화가 다비드가 제작한 초상화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에는 명마 ‘마렝고’가 황제를 태우고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나폴레옹이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할 때, 알프스를 넘었던 사실을 기념한 이 작품 덕분에 순종의 아랍말 ‘마렝고’는 덩달아 이름을 떨쳤다. 프랑스에도 군사용으로 적합한 아르드네나 페르슈롱 등 다양한 품종의 토종말이 있는데 아마도 전리품으로 소유했던 잘생긴 아랍말을 과시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때 타고 갔던 것은 말이 아니라 추위에 강한 나귀였다고 하니 영웅에게 ‘애마’의 위용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처럼 불세출의 영웅에게는 그에 걸맞은 명마가 있어 왔다. 말의 충성스러움은 ‘견마지성(犬馬之誠)’이라 하여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하기 때문이다. 생사를 오가는 전장에서 한 몸처럼 싸웠기 때문에 단순히 말과 주인이라기보다 ‘전우’ 또는 ‘조력자’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동서양 영웅들의 애마가 사람처럼 이름을 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드리워진 경기 불황의 그늘이 길고도 짙다.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이 시작되었으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수많은 영웅과 그의 조력자가 되어왔다. 지난해 초부터 최전선에서 검사와 치료에 땀 흘리고 있는 의료진뿐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식당에서조차 불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말없이 협력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 국난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영웅이고 조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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